아 조지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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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원한 행복’을 묘사하려는 시도는 늘 실패했다. 행복이 영원해지는 순간, (영원은 끝없는 시간이다.) 대비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 시간이,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우리가 누리는 행복의 “가치” 자체가 끝없이 추락한 그 곳에서, 행복을 느낀다한들, 그것이 여전히 우리에게 행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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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대비’라는 방법을 통하지 않고서는 행복을 묘사할 수도, 심지어 상상할 수도 없는 듯하다.」
→ 내가 알고 있는 쾌락 그 이상의 것을 천국에 빗대는 우리는 결국, 그 너머를 모르기에 가장 그에 근접할 것으로 추측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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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아는 가장 큰 쾌락을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극대화해 천국을 상상해보고, 음미해볼 것이다.
하지만 결코 그것은 우리의 생각보다 거창한 행복이 아닐 것이고, 풀 죽은 우리는 처음으로 다시 돌아와 지옥을 상상하겠지.
→ 시간이,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우리가 누리는 행복의 “가치” 자체가 끝없이 추락한 그 곳에서, 행복을 느낀다한들, 그것이 여전히 우리에게 행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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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의 천국으로 넘어가보자. 거기는 남자 한 명당 미녀 77명이 딸려 있는데, 여인들은 남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모두가 동시에 악을 써댄다. 악몽이 따로 없다.」
「끊임없이 “모든 것은 밝고 아름답다.”고 장담하는 영성론자들도 마찬가지다. 지각 있는 사람이 혹하기는 커녕 참고 들어줄 만한 내세 활동도 그려내지 못한다.」
「“뛰고, 춤추고, 장난치고, 백포도주와 적포도주를 모두 마시고, 황금 왕관을 세는 것 말고는 온종일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어라.”
듣기만 해도 지겹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조지 선배!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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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새상은 전쟁 중이고 평화를 원한다. 하지만 고결한 야만인이 한때 존재했다면 모를까,
[고결한 야만인(Noble Savage)은 문학에서 비문명인을 이상화한 개념으로,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무구한 인간성을 상징한다.]
세상은 평화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 세상은 존재 가능성을 희미하게 인식할 뿐 정확하게 정의 내릴 수 없는 무엇인가를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평화로운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자세히 말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 무엇인가[평화]의 긍•부를 따지기엔 그저 야만인인 우리는 절대 불가능에 가깝다. 아직, 우리도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지 못하고,
이후 그것을 알더라도 그 과정에서 우리가 겪을 수고로움이, 끝내 손에 쥘 평화라는 게 결국 우리의 “이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니 다시 리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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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대다수의 유토피아 창조자들은 치통만 없어지면 행복하겠다고 생각하는 치통 환자들과 비슷했다.
그들은 일시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가치가 있었던 것을 지속시키는 방식으로 완벽한 사회를 만들려 했다. 부질없는 일이었다.
그보다는 인류에게는 마땅히 나아가야 할 노선이 있고, 이를 위한 대전략도 마련되어 있지만, 예언은 우리의 소관이 아니라고 말하는 편이 더 현명했을 거다.
완벽을 상상하려고 하는 사람은 자신의 공허함을 드러낼 뿐이다.」
→ 결국 자신이 짜낸 이세계를 마음대로 부풀리고, 내세워보아도 생각보다 심심한 행복•평화에 실망한다.
동시에 그들은 끝까지 이상적 세계에 대한 실존만큼은 지키고자, 그들이 선택하는 것은 끝내 자신의 능력 부정, 본인의 상상력 미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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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을 창조하려는 순간, 그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계몽된 후이넘보다 악취 나는 야후가 발전 가능성이 더 많다는 인상을 풍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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