朋哉 : 보통 다자이상이라고 해, 오사무라고 부르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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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자본가의 주머니를 두둑이 채워 준다는 점에선 우리든 프롤레타리아트든 마찬가지야.
자본주의 경제 사회에서 사는 게 배반이라면, 투사는 어떤 신선이 되는거지? 그런 말이야말로 극단주의라는 거야. 소아병이라는 거야.
프롤레타리아트 하나에 대한 공헌, 그걸로 충분해. 그 하나가 고귀한 거야. 그 하나만을 위해 우리는 힘껏 살아 있어야 해.
그리고 그게 훌륭한 플러스의 생활이지. 죽다니 바보짓이야. 죽다니 바보짓이야.」
→ 그래, 당장에 우리가 뭘 할 수 있는지 직시해야지. 애초에 “할 수 없는 것”을 우상으로 점쳐두면 어떡해.
아오이 너가 기준을 높게 잡은 거잖아.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자신의 立場에 자위 중 인거 잖아.
본인의 우울을, 제 흥에 겨운 자살 퍼포먼스 계획을 정당화하고 사회 구조의 탓으로 전부 돌려버리려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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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모가 말한다.
“너는 얼굴이 못생겼으니 애교라고 잘 부려야지.
너는 몸이 허약하니 마음이라도 착해야지.
너는 거짓말을 잘하니 행실이라도 올발라야지.”」
→ 현재도 이런 말을 실제로 뱉는 어른들이 꽤 자주 보이는데, 이는 사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노인네의 팁을 가장한,
“이기적인 개인이 뭉쳐 본인들의 욕망을 실현•정당화시킨 추악한 실정법”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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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포장마차를 나와 전차 정류장으로 가는 도중, 시들시들한 나쁜 꽃을 세 사람에게 건넨 걸 아프도록 후회했다.
느닷없이 길가에 쭈그리고 앉았다. 가슴에 십자를 긋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격렬하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일본어 두 마디를 속삭였다. “피어라.피어라.”」
→ 이름 모를 누군가를, 스쳐지나간 인연을 축복하고 행복을 빌어주다니.
아직(아마 평생) 나는 평화의 끝을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런 고결한 야만인의 신성함은 평화를 완성시키는 데에 필수불가결적이지 않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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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않은 봄?」
→ 과연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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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다자이 유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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